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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저리 이야기
세저리 입학동기 2명, 동아일보 입사 동기가 되다
- 석쌤+다연+승연
- 조회 : 666
- 등록일 : 2024-11-26
참 재미있는 인연이죠. 세저리에 같이 입학한 동기생이 똑같이 인턴 과정을 거쳐서 동아일보 입사 동기가 됐으니까 말이죠. 16기로 세저리 졸업반인 김다연, 조승연 씨 이야기입니다. 두 사람 모두 비교적 나이도 있고, 입학 전에 이미 다양한 경험을 갖고 있다는 공통점도 있네요. 하지만 사람이 살면서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진로를 수정하는 일은 특별한 일도 아니죠. 오히려 그런 경험이 사람을 더 성숙하게 만드는 일이니까요. 제가 이런 이야기를 왜 하는지는 두 사람이 보내온 소감문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모처에서 동기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 왼쪽부터 김다연 씨, 단비뉴스 양혁규 편집국장, 조승연 씨, 강민정 씨.
두 사람을 따로 소개하려다가, 아무래도 같은 말을 반복해야 할 것 같은 두 사람의 공통점을 감안해서 좀 길지만 한꺼번에 소개합니다. 가나다 순입니다.^^ 모쪼록 세저리에서처럼 동아일보에서도 동기끼리 즐겁고 재미있게 지내길.
한 가지 빼먹을 뻔한 뒷얘기. 서울대 팩트체크센터를 이끌고 있던 정은령 센터장님이 이번 학기부터 세저리에 교수님으로 합류하셨는데(아래 다연 씨의 글에 등장하는 '은쌤'), 정 교수님이 바로 동아일보 출신이라는 것. 다연 씨가 이 글을 쓰는 사람의 지도반에서 이번 학기에 은쌤 반으로 옮겼는데, 지도반을 옮기니 바로 합격 소식이.^^ OTL...
(대문 사진에 찬조출연한 사람은 지금 한국일보에 있는 김태연 기자. 역시 16기 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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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16기 김다연입니다. 세저리에서 얼마나 양질의 수업을 들을 수 있는지, 또 이곳에서 어떻게 공부하면 언론사 공채에 붙을 수 있는지는 기존에 합격한 세저리 동료분들이 이미 좋은 글로 많이 남겨뒀습니다. 그래서 저는 태도와 마음가짐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저는 실패를 참 많이 했습니다. 세저리 입학 전에는 책이나 시나리오를 써보기도, 로스쿨을 준비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망하거나 떨어졌습니다. 직장 경력 없이 빈손으로 서른이 넘어 세저리에 입학했고, 이후에도 실패는 계속됐습니다. 서류 합격률은 절반에 그쳤고, 서류가 ‘적부’라고 알려진 언론사에서도 종종 불합격했습니다. 필기는 총 8번 봤지만, 그중 7번은 떨어지고 단 한 번 합격했습니다.
단비뉴스 기자로 취재할 때도 특출난 역량은 없었습니다. 기사 감각이 뛰어나 좋은 발제를 올리거나 참신한 앵글을 잡은 적도, 철옹성 같은 취재원을 돌파력 있게 뚫거나 숨겨진 단독 정보를 발굴한 적도 없습니다. 입사 전형은 물론 취재 과정에서도 제 부족함을 마주할 때마다 ‘기자로서 역량이 없는 건 아닐까’, ‘기자가 될 수 없는 건 아닐까’라는 나약한 생각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지역사회부 치악산 둘레길 탐방에 함께한 다연 씨와 동료들. 바로 뒤에 룸메 조벼리 씨와 기자협회보로 간 박성동 씨, 한국일보 사진기자가 된 박시몬 씨 등이 보인다. 제일 앞과 뒤는 누군지 생략.
다만 제가 가진 몇 안 되는 장점이 있다면 ‘실패를 인정하고 일어나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태도는 세저리에서 배웠습니다. 안쌤께서 취재보도론 첫 수업 시간에 하셨던 말씀을 자주 떠올렸습니다. “여러분은 앞으로도 계속 실패할 것이다. 다만 실패를 대하는 태도에서 그 사람의 인생이 달라질 것이다.” 이 말씀을 되새기며, 어차피 실패하고 처참하게 무너질 수밖에 없는 미래라면 차라리 제대로 실패해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제대로 실패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기 위해, 늘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서류에서 자꾸 떨어지자, 지원하려는 언론사 출신 기자들이 쓴 책들을 탐독하며 저와 결이 맞으면서도 자소서 소스로 쓸만한 내용들을 발췌해 저만의 문장으로 녹여냈습니다. 정규 수업, 단비회의, 팀/부서회의 때 교수님들이 하신 말씀 중 서류에 녹여낼 수 있는 소스도 정리해 22페이지짜리 단권화 파일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필기에서도 탈락을 거듭하자, 일명 ‘다멱스(다연이가 멱살잡고 끌고가는 스터디)’를 만들어 논술과 작문에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빡빡한 스터디를 만들었고, 막학기엔 안쌤의 저널리즘 글쓰기 수업을 다시 듣기도 했습니다.
세저리 내 모처에서 공부에 열중하다 포착된 모습. 그 짧은 순간에도 장난기 발동.
물론 매너리즘에 빠지고 스스로 타협하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순간마저도 ‘어쨌든 내가 해야 할 몫들을 유기하지 않고 일단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으며 버텼습니다.
이런 마음가짐은 인턴에서도 큰 도움이 됐습니다. 인턴 5주차에 접어들면서 스스로 역량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심신이 닳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는 망한 것 같아도 ‘마음만큼은 물러서지 말자’는 은쌤의 조언, 힘든 순간은 ‘마음의 근육을 기르는 시간’이라고 하셨던 제쌤의 조언과 ‘어차피 될 사람은 된다는 생각으로 즐기고 와라’는 석쌤의 말씀을 되새기며 일어났습니다. 정신이 흐트러질 때는 손등에 교수님들의 조언을 써놓은 채로 출근하기도 했습니다.ㅎㅎ 덕분에 서류부터 최종면접까지, 매순간 ‘이것보다 더 열심히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만큼 후회 없이 임할 수 있었습니다.
세저리에 오지 않았다면 적지 않은 나이와 실력 부족에 대한 자의식에 갇혀 유종의 미를 거두기 어려웠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모의 면접을 꼼꼼하게 봐주신 은쌤과 제쌤, 면접 전 면담을 통해 힘을 실어주신 석쌤, 인턴 과정 중간중간 따끔하게 혼내주신 안쌤, 응원한다며 인사를 주셨던 박쌤께 정말 감사드린다는 인사를 전합니다.
그리고 자기 일처럼 발벗고 나서 힘을 보태준 동료들도 정말 많았습니다. 인턴 첫 출근 날, 응원한다며 영양제와 커피 기프티콘을 보내준 따듯한 동기들, 갑자기 불쑥 연락해 무언가 물어보거나 부탁해도 기꺼이 하나라도 더 알려주기 위해 애써준 세저리 동료들, 그리고 저희 아버지가 많이 편찮으셨는데 인턴 합격 소식을 듣고 ‘서울에 있는 동안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자기가 언니 대신 달려가겠다’고 말해준 룸메 벼리에게도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저도 여러분들이 도움이 필요할 때, 있는 힘껏 손을 보태도록 하겠습니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편하게 연락 주시길. 그리고 세저리에 있는 동안 마음껏, 제대로 고꾸라지고 실패하다가 끝내 자신만의 방법으로 일어나시길. 수많은 실패가 나를 낙오자로 만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태백에는 5월에도 벚꽃이 핀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멀리서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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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16기 조승연입니다. 2024년 동아일보 기자로 합격해, 25일부터 첫 출근을 시작했습니다. 다음 주 수요일까지는 직무 기본 교육을 받고, 아마 그다음 날부터 수습 기자로서 경찰서를 돌기 시작할 것 같습니다. 예전에 한 다큐멘터리에서 한겨울 새벽에 패딩을 입고 취재를 다니는 수습기자들의 모습을 보며 혀를 차며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있는데... 그 모습이 제 미래가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네요.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는 20대 대부분의 시간 동안 기자라는 직업을 꿈꿔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학부 시절엔 영화학을 전공하며 주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습니다. 당시엔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고 싶다는 패기와 열정만 가득했던 것 같습니다. 카메라를 들고 낯선 현장을 누비며 제 일상 바깥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마냥 즐거웠습니다. 졸업 후에는 서울의 한 신문사에서 PD로 일을 시작해 영상 제작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카메라를 들고 천진스럽게 웃고 있는 승연 씨. 세저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표정.^^ 뭐든 끝장을 보려면 이런 긍정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나 할까...
그러다 입사 약 1년 만에 발생한 이태원 참사가 제겐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참사 직후 희생자 가족들이 한남동 주민센터에 사망자 신원을 확인하러 왔습니다. 그 중엔 친구와 연락이 닿지 않아 애태우던 제 또래의 여자 일행도 있었습니다. 저는 오열하는 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는데, 그들 중 한 명이 저를 보곤 눈물을 닦으며 일어나더니, 제게 카메라를 치우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습니다. 침입자를 바라보는 듯한 경멸이 눈빛에 어려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인상적인 장면 하나 담기 위해 카메라 드는 데 급급했습니다. 그런 제 안에 어딘가 고장난 부분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회사를 관두고 작년 3월 세저리에 왔습니다.
저는 당장의 취업 준비보다는 저널리즘에 대한 공부 자체를 더 하고 싶어서 세저리에 온 케이스입니다. 그냥 놔두면 이도저도 아닌 언론인이 될 것 같았고, 늦게나마 저널리즘에 대한 기초적인 내용부터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그런 제게 세저리는 최적의 선택지였다고 생각합니다. 학부에서 신문방송학 등 언론 관련 수업을 들어본 적은 없었지만, 세저리에서는 저널리즘에 관한 다양한 수업을 들으며 어렵지 않게 언론인으로서 필요한 부분에 대한 이해를 넓혀갈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언론 윤리 수업을 들으면서 재난 보도에도 윤리 준칙이 있다는 기초적인 사실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언론이 피해자 가족의 오열 등 과도한 감정 표현을 보도하는 건 선정적인 보도이므로 지양해야 한다는 준칙을 알게 되니, 자연스레 이태원 참사 당시 제 모습이 떠오르더군요.
돌이켜보면 제가 세저리에 처음 올 때에는 졸업 후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명확한 목표를 갖진 않았습니다. 대신 세저리에 와서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겠다는 계획을 구체화하게 된 케이스입니다. 단비뉴스에서 활동하면서 기자와 PD 역할을 오가며 취재 경험을 쌓을 기회를 가졌습니다. 매체를 넘나드는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면서 이런 저런 시행착오를 거듭해 경험했고, 크고 작은 성공과 실패를 겪으면서 저란 사람에게 더 잘 어울리는 지향점을 찾아가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렇게 경험이 하나둘 쌓이면서, PD가 아닌 기자로서 한번 저널리즘을 제 삶에 진지하게 녹여내보고 싶다는 생각이 점차 커진 것 같습니다. 세저리가 아니었다면 기자란 직업을 고민해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지난 가을, 지역사회부 가을 현장답사(라고 부르는 야유회) 때 찾아간 배론성지에서 갑자기 어린 시절로 돌아간 동기들.
세저리에 몸담았던 지난 2년을 돌아보면 부족하고 아쉬운 점 투성입니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끝까지 절실하게 부딪쳐본 경험 하나는 남겨두고 떠난다는 점입니다. 작년에 꿀벌 관련된 기사를 썼을 때가 그러했는데, 그 경험 하나가 자소서를 쓰거나 면접을 준비할 때도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기사의 규모와 상관 없이, 혹은 꼭 기사가 아니더라도 자기 한계에 부딪쳐본다는 경험을 단 한번이라도 세저리에서 꼭 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저도 세저리에서 완성짓지 못한 경험들이 꽤 많은 편인데, 중간에 귀찮거나 어렵다고 포기해서 뚝 끊긴 경험들은, 자소서를 쓰거나 면접을 준비할 때 활용하지 못해 문득문득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성공 여부와 무관하게 어떻게든 끝까지 부딪쳐보고 마무리짓는 경험들이 입사 전형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세저리에는 이 ‘분투’를 도와줄 수 있는 선생님과 동료들이 바로 옆에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