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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100번째 합격자는 고희진 경향신문기자
- 관리자
- 조회 : 20561
- 등록일 : 2014-11-24
5기생 고희진이 <경향신문> 기자 공채에 최종합격했습니다. 희진은 저널리즘스쿨 설립 이래 100번째 합격자이기도 합니다. 졸업이 석달 남은 2학년을 포함하더라도 130여명 중에 벌써 100명이 범언론계에 친출했으니 당신들이 자랑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널리즘스쿨 설립 준비로 몇 달간 밤잠을 설치던 2007년 이맘때가 생각납니다. 총장님 등 세명대 간부들께 프리젠테이션을 할 때 "언론사 입사시험은 몇 백 대 일 경쟁을 뚫어야 하니 한 해 5명 정도 입사하면 성공"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4배에 이르는 합격자를 배출하게 된 겁니다.
기자들을 조선호텔로 초대해 한국 최초 저널리즘스쿨 설립계획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할 때 기자들 표정을 잊지 못합니다. 대개 서울의 명문대학 출신인 기자들은 그저 만찬을 즐기고 값비싼 선물을 고마워할 뿐 질문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제천 시골에 세명대 간판으로 뭘 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 때문이었겠지요.
우리는 그런 의구심과 서울중심주의를 보란 듯이 깨고 "지방에 최고가 있는 시대"를 열었습니다. 이제 우리 스쿨은 한국언론진흥재단과 한국언론학회 등 언론학계가 우리를 집중조명한 <언론학 교육의 혁신모델>이라는 책을 내고 <신문과방송> 등 매체들이 집중보도할 정도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를 벤치마킹하는 대학도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이 오히려 "눈 덮인 들판을 함부로 걷지 말라"고 하신 서산대사의 싯구를 생각해볼 때입니다. 우리가 앞서 간 것을 자랑하는 대신 한국의 언론교육을 바른 방향으로 이끌었다는 확고한 평가를 받는 게 중요합니다.
지금도 입사시험 실무테스트와 최종면접에서 우리 스쿨 프리미엄을 받은 이들이 꽤 있지만, 앞으로 <단비뉴스> 경력이 신입기자 공채뿐 아니라 경력기자로 들어가는 보증서가 될 때까지 우리 스쿨의 신뢰도를 더 높여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연고주의가 아니라 실력을 정당하게 평가받는 겁니다.
한국 언론계 말고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언론고시"도 조금씩 바뀌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언론사 연봉이 적다고 생각하지만, 언론사 사장을 비롯한 간부들 만나보면 다른 얘기들을 합니다. 수백 대 일 경쟁을 뚫고 들어오는 기자/PD가 1~2년은 인풋보다 아웃풋이 작을 정도로 훈련이 안 돼 있으니 경영압박 요소가 된다는 겁니다. 언론사가 경력기자 채용을 늘리고 있는 것도 고육지책의 하나라 하겠습니다.
우리 졸업생들이 각종 언론상을 휩쓰는 등 발군의 활약을 하고 있는데, 그들의 뒤를 따르기 위해 재학생들은 한층 더 시간의 구두쇠가 돼야겠습니다. 우리 스쿨의 신뢰도는 스쿨 멤버 전체의 신뢰도를 합한 것과 일치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이 바로 주인공인 이유입니다. (봉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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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진은 강원대 문학상에 소설이 당선될 정도로 "문청" 기질이 있었는데 기자와 소설가 사이를 방황하다가 결국 기자가 됐네요. <경향신문> 문학 담당 기자를 노린다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도 있겠습니다. 문학 담당 기자가 되어 좋아하는 책 읽고 평론을 쓰면서 생계도 유지한다면...... 일과 놀이를 겸하는 생애! 꿈 같은 얘기네요.
한 기수에 국어/국문과나 문창과 출신이 한둘은 꼭 들어오는데 문청의 계보가 이들로 이어진다고 해도 망발은 아닐 듯합니다. 1기 이주현(부경대, 씨네21) 김하늬(고려대, 토마토TV), 2기 유정화(서울대, JTBC), 3기 구세라(단국대, 허핑턴포스트), 4기 김희진(연세대, 연세대홍보팀) 윤지현(고려대, 연합뉴스), 5기 양승희(이화여대, 머니투데이), 6기 이슬비(부산대, 조선일보) 이청초(고려대, 강원민방), 7기 황종원(중앙대) 등이 그들입니다. 물론 국어국문학 전공이 아닌 문청들도 있습니다. 학부에서 대학문학상을 탄 사람은 1기 김현주(서울대, SMC), 2기 곽영신(한양대, 세명대홍보팀 ), 5기 고희진(강원대, 경향신문) 등이 떠오르네요.
지금도 생각나는 건 희진이 자기소개서에 임금 광해군이 과거시험 최종면접자로 나서서 "섣달 그믐밤의 서글픔은 어떤 연유인가"라고 질문했다는 내용을 쓴 거였습니다. 어떤 맥락에서 자기소개서에 그런 구절이 들어갔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광해군도 문청이었네"라는 내 느낌은 남아있습니다. 그 시절 과거시험에서 그런 질문을 한다는 건 대단한 감수성의 소유자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 아니겠습니까?
실은 연산군도 대단한 시인이었습니다. 오늘 저녁 재학생들 고기뷔페 데리고 가기로 한 약속시간이 다 돼 연산군의 시는 갔다 와서 소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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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연산군의 시를 소개합니다.
용렬한 자질로
왕위에 있은 지 십년
너그러운 정사 못 펴니
부끄러운 마음 금할 길 없네...
사물을 궁리하니 하늘보다 높고
인간사 헤아리니 꿈속과 같네
공명에 얽매임은 한갓 부질없는 짓...
폭군이라고만 알고 있는 연산군의 고민이 느껴지나요?
연산군은 그래도 자기가 잘못하고 있다는 건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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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 반정이 있기 며칠 전에는 뭘 예감한 걸까요?
눈물을 흘리며 이런 시를 읊습니다.
인생은 풀섶의 이슬 같아서
서로 만날 때가 많지 않네
귀양을 가면서 처자식까지 영영 이별하게 되는 연산군.
그도 광해군도 시대를 잘 만났더라면 명군이 될 자질이 충분했거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