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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1기생 평전]세계일보 합격한 서른셋 김선영
- 관리자
- 조회 : 24504
- 등록일 : 2013-07-01
지난 일요일 서울에서 열린 동창회 겸 사은회에서 많은 졸업생들을 보고 반가웠습니다. 그러나 1기생 참석자가 "작은 하늬" 하나뿐이어서 서운한 마음도 없지 않았습니다. 2기들이 행사를 주도한 데다 1기들은 결혼도 하고 취재에 지쳐서 그렇겠거니 하면서도 장녀나 장남이 빠진 명절 같다는 생각이 얼핏 스쳐갔습니다. 명절이 되면 어머니는 입이 함박꽃처럼 벌어지면서도 "윤희도 있었으면 좋을 텐데..." 하며 시집간 장녀를 보고 싶어 했습니다. 내가 "우리집 며느리가 명절에 친정 가면 좋겠어요"라고 반문하면 "그렇긴 하지"라면서도 말끝을 흐렸습니다.
동창회에서 1기생 안부를 물었더니 기쁜 소식이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지난달 <세계일보> 공채에 세저리 출신이 합격했다는 거였습니다. 다음 날 아랑에서 <세계일보> 합격자 명단을 조회했더니 "김선영"이라는 이름이 있더군요. 거의 매일 아랑에 들어갔는데 우째 이런 일이... 연락 안 해서 괘씸한 건 뒷전이고 바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랬더니 "죄송하다"는 말을 연발하면서 "그동안 신경 쓰게 해서 차마 전화를 못 드렸다"는 거였습니다. 죄송하기는 무슨...
선영이 죄송하다는 근거는 아마 그 사건 때문인 것 같습니다. <청주MBC>에 합격했다가 군기를 잡으려는 나이 적은 선배를 들이받고 사표를 던져버린 겁니다. 선영은 장교 출신에 자존심이 강하고 자발적으로 1기 반장을 맡을 정도로 리더십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이 많아 기자가 됐고 욱하는 성질도 나와 비슷해 합격축하 전화에서도 성질 죽이라고 당부했지요. "네, 네" 하더니 결국 그놈의 욱하는 성질머리 때문에 본인도 후회하고 내 가슴도 철렁 내려앉게 하고 말았습니다.
바로 알았더라면 내가 <청주MBC> 사장을 찾아가서 비는 한이 있더라도 복귀시킬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한참 뒤에 다른 일로 세명대를 방문해 점심을 함께한 사장한테서 그 소식을 들었습니다. 한때 "선영아 사랑해"라는 티저광고가 버스 바깥에 붙어있었는데, 내게는 무엇을 광고한 건지 모르겠고 김선영만 생각나게 하는 거였습니다.
한번 맺어진 사제지간은 깨질 수가 없습니다. 예로부터 군신지간과 부부지간은 깨질 수 있어도 사제지간은 깨질 수 없다고 했습니다.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선생이 되고 보니 맞는 말이었습니다. 중도에 학교를 그만둔 제자들 중에 연락 끊긴 이들이 많은데 사정에 따라 학교를 그만둔 것이 무슨 원죄라도 되나요? 연락 안 한 것이 죄송해서 연락을 영영 끊는 거야말로 모순된 생각 아닐까요?
지나고 보니 잘난 제자보다는 괜히 스스로 못났다고 생각하며 멀리서 맴돌던 제자가 더 생각나더군요. 제자를 생각하는 마음 대부분은 처음부터 걱정으로 시작됐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애교 많은 여제자보다 항상 멀찌감치 서있어 내가 애정을 표하지 못했던 남제자가 더 생각날 때가 있습니다. 지난달 1기생 하주희 결혼식에 갔다가 일반 회사에 취직하기 위해 자퇴한 이금락을 보고 얼마나 반가웠던지...... 사귀는 사람이 있다는데 웬만하면 창원까지라도 결혼식에 갈 생각입니다.
아주 긴 인생을 산 것은 아니지만 내 경험칙에 따르면, "우리 언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라는 아쉬움이 살다보면 예기치 않은 때 뜻밖의 장소에서 현실로 조우해 깜짝 놀라는 경우가 있습니다. 죽은 고기가, 한때는 거슬러 오르기도 했던 추억의 강물에 몸을 싣고 기억 저편으로 떠내려가는 것처럼, 죽은 사람만이 이승에서 다시 만날 기약이 없어 잊혀지게 됩니다. 연락두절된 1기생들, 계속 연락이 없어 더 그리워지면 이 난에 아예 당신들 과거를 모두 까발리는 평전을 연재할지도 모릅니다.^^ 봉샘